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넌 모를거야

밤마다 내가

잠든 나를 살그머니 눕혀놓고

네게로 간다는 걸


이건 더욱 모를 거야

밤마다 네가

잠든 너를 벗어나

나를 맞으러 나온다는 걸


우리 둘이서 즐거이 손잡고

요단강을 넘나들며

벗은 몸에 수천의 꽃잎을 달고

아름다운 불꽃을

입으로 내뿜으면서

발목에 지구를 매달고 날아다닌다는 걸

정말 모를거야


깊은 밤 우리 둘이서

맑은 유리처럼 떠올라

하늘을 마시고 달을 삼키며

그림자도 없이

사랑하고 포옹한다는 걸

넌 모를거야


그리고 넌 이것도 모를거야

밤이 가고 아침이 오면

우리는 헤어져

다시 잠든 몸속으로 들어가

소리도 없이

드러눕는다는 걸

드러누워 불을 끄고

땅 속 깊이 우리의 꽃대궁을

묻어둔다는 걸

그리고 잠 속 깊이 우리의 영혼을

감춘다는 걸

넌 더욱 모를거야


김혜순, 날마다 맑은 유리처럼 떠올라


허망에 관하여

2014. 10. 30. 20:01

내 마음을 열

열쇠꾸러미를 너에게 주마

어느 방 어느 서랍이나 금고도

원하거든 열거라

그러하고 무엇이나 가져도 된다

가진 후 빈 그릇에

허공부스러기쯤 담아 두려거든

그렇게 하여라


이 세상에선 누군가

주는 이 있고 누군가 받는 이도 있다

받아선 내버리거나

서서히 시들게 놔두기도 한다

이런 이 허망이라 한다


허망을 삶의 예삿일이며

이를테면 사람의 식량이다

나는 너를

허망의 짝으로 선택했다


너를 사랑한다


허망에 관하여, 김남조

너의 의미

2014. 10. 19. 14:21

 

흐르는 물 위에도
스쳐가는 바람에게도
너는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남긴다

한때는 니가 있어
아무도 볼 수 없는 걸 나는 볼 수 있었지
이제는 니가 없어
누구나 볼 수 있는 걸 나는 볼 수가 없다

내 삶보다 더 많이 널 사랑한 적은 없지만
너보다 더 많이 삶을 사랑한 적도 없다

아아, 찰나의 시간 속에
무한을 심을 줄 아는 너

수시로
내 삶을 흔드는
설렁줄 같은 너는, 너는

너의 의미, 최옥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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